성도 완화강가의 두보초당은 원래 중국 당나라 시대의 대시인 두보의 성도 임시거주지였다. 서기759
년 겨울, 두보는 “안녹산의 난”을 피해 초가집을 짓고 거주하였는데, 그것이 지금의 성도초당이 된 것이다. 두보 선생은 이후 4년 동안 이곳에 머물며 시가창작에 혼신의 힘을 다했기에 지금의 240여수의 시가가 탄생 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초당은 청나라 가경(嘉庆–仁宗(인종의 연호,
1796-1820)시기의 건축양식이 완벽하게 보존되고 있으
며 총면적은 300묘에 가깝다. 이미 이곳은 기념사당의 구조와 시인의 옛 주거지로서 풍모를 한껏 자랑하며 건축양식은 옛스럽고 고풍스럽다. 조경풍치림 또한 아름답고 수려해서 유명한 문화성지(圣地)라 불릴 만 하다.
옛 두보초당 안에는 대문벽, 정문(正门), 대관서, 시사당, 자문, 공부사등이 일렬로 위치하고 있다. 또, 그 두 옆으로 대칭의 회랑과 기타 부속 건축양식이 있으며 그 중간에 유수가 회수하는 곳으로 작은 다리로 이어져 있고 대나무와 잘 어우러져 옛스러우며 고풍스러운 이미지와 깊숙하고 고요하며 수려한 경관이 돋보인다.
또, 공부사 동쪽에는 “소릉초당” 비석정이 있다.
이미 두보초당의 대표적인 명소로 성도의 유명한 자연경관으로 자리잡고 있다.
공부사)뒤에는 두보 시의 묘사와 명대)의 건축양식에 의거해 “옛 초가집 경치구역”을 다시 재건하여 옛 시인의 거주 공간 및 전원풍경을 볼 수 있으며 두보시에서 느꼈던 시 이미지와 분위기는 향수
에 젖도록 한다. 분경원내에는1999년 두시서예 목각랑에서는 100여수의 두보시 목각
작품을 진열해 놓고 있다. “대웅옥전”의 대아
당)내의 국내 최대 면적의(64평방미터)의 대형벽
화와 12분의 유명한 시인조각상이 있으며 두보의 생애와 중국 고대 시가발전사를 형상화하여 전시해 놓았다. 또, 기본 진열관의 (천년 시성의 계승작품으로 제 5회 전국10대 진열전시관 최고품”에서 최우수 창의상을 거머쥐었다.“정
계초당”의 문헌도안 자료전시관은 국가지도자와 외국귀빈, 해외의 유명 인사등이 초당을 찾아와 그림, 싸인, 제사 및 선물을 남기고 간다.
“당풍유운” 관광객센타는 두보초당 특색의 여행상품
들을 개발하고 전체적으로 모범화된 시장판매를 하고 있다. 두보초당 시화원과 당풍유운은 서예를 진열하고 교류하며 판매 및 소비, 또 소장하는 서로 관련된 영향으로 문화발전의 높은 수준 향상을 위한 교량적 역할을 하고 있다.
당대유적 진열관은 초당 동북쪽에 위치한다. 2001년 말 초당에서 큰 면적의 당대 생활유적과 문물들
이 발굴되었다. 이것은 방대하고 풍부한 두보초당의 역사적 문화내용을 내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두보가
왕성한 활동을 하던 시기의 거주환경 및 생활정경을 묘
사하는 근거가 되어 주고 있다. 이것을 토대로, 고금을 막론하고 초당절은 혼란한 국면을 평정하게 해주는 위
치적 역할을 하며 두보초당이 지니는 역사상의 풍성하
고 풍부함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게다가 성지가 지니는 신선하고 새로운 이미지가 한층 부각되기 때문
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05년 중건된 만복로는 녹나무 숲의 초당동쪽에 위치한다. “동쪽에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전각이 있고 서쪽에는 만불로가 있다”던 역사상 유명한 문화도시의 성도의 만복로를 복원한 것이다. 난간에 기대어 멀리 바라보면 아름다움에 눈을 거둘 수 없는 두보초당은 대표적인 건축양식과 문화관광방면에서도 밝은 등불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날의 두보초당은 풍부한 역사문화를 내포하고 전체적으로 새로운 정신면모로 국내,외 여행객들의 방문을 환영하고 있다. ִ. |